박찬호라는 영웅이 가르쳐 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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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캠프란 야구선수들에게 있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시기일까?
          
일본 야구 팀 전지훈련을 시찰하기에 앞서 필자는 한국의 두산 팀 전지 훈련을 보러 갔었습니다. 1월 말은 박찬호 선수가 두산 팀 전지훈련에 참가하고 있었던 때라 도대체 그가 어떤 연습을 하고 있을지 다소 궁금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박찬호 선수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두산) 팀 훈련에 합류해서 하는 연습이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가기 전부터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전지훈련이기는 하지만 함께 달리거나 불펜에서 가볍게 투구연습을 하는 정도일 거라고 말이죠. ‘볼 만한 가치가 있는 훈련’을 보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던 것입니다.
 
막상 가보니 역시나 그는 시종 가벼운 연습으로 일관하고 있었습니다. 시기적인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다른 선수들을 배려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가 간 날은 불펜에 들어 갈 예정조차 없었던 듯 했습니다.
 
필자는 젊은 두산 선수들의 연습광경을 지켜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됐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앞서 칼럼 첫머리에 언급한 ‘스프링캠프는 무엇을 해야 하는 시기일까?’라는 것인데요. 정규리그에 앞서 야구를 하기 위한 체력단련을 하는 시기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뿐일까요? 초심으로 돌아가보자는 뜻에서 굳이 필자는 이 같은 ‘기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습니다.
 


훈련은 비교적 순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유연체조부터 시작해 투수와 함께하는 수비연습, 그리고 나서 투수는 투수끼리 야수는 야수끼리 나뉘어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투수들은 불펜 피칭을 하고 야수들은 타격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 광경은 일본과 한국 간에 별반 큰 차이는 없습니다.
 
두산 선수들이 식사 및 별도의 훈련으로 한산해 진 점심시간 때였습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빨간색 훈련복을 입은 박찬호 선수가 다른 선수들이 사라지고 없는 텅 빈 운동장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는 김광수 코치와 두 세 마디 정도 대화를 나누더니 센터와 라이트 사이로 천천히 달려 가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아메리칸 노크(knock)를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아메리칸 노크란 노커(knocker, 수비 연습을 위해 공을 쳐 주는 사람)가 외야에서 대기하고 있는 선수에게 최대한 잡기 힘든 양 사이드 방향으로 공을 쳐 선수들을 무조건 뛰게 하는 훈련 방법 중 하나입니다. 공을 잡기 위해서는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노커가 일부러 잡기 힘든 위치로 공을 쳐 주기 때문에 선수의 입장에서는 공을 잡는 것보다는 오히려 하반신 강화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죠.
 
김광수 코치는 그야말로 한 공, 한 공 정교하게 공을 쳐 줍니다. 쉽게 잡을 수 있는 위치로는 절대 공을 쳐주지 않는 거죠. 박찬호 선수는 우측에서 센터로, 센터에서 우측으로 마치 김광수코치에게 조종당하듯 전력질주를 되풀이합니다. 5개, 10개……. 이쯤 되자 멀리서 봐도 땀으로 뒤범벅이 된 박찬호 선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보기 보다 상당히 힘든 훈련인 것 같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쫓아 가다 결국 공을 잡지 못하게 되면 이따금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아쉬워합니다. 김광수 코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반대방향으로 공을 쳐줍니다. 20개, 30개 째 쯤 되자 박찬호 선수의 다리는 점점 꼬이기 시작해 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공을 못 잡게 되자 운동장에 드러누워 버리고 숨은 곧 끊어질 듯 헐떡입니다.
 
그러자 김광수 코치가 이렇게 외칩니다. “어이! 영웅, 힘내야지!” 김광수 코치의 목소리 톤에서 그 말이 농담 섞인 격려의 말이라는 것임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이‘영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운동장 저 멀리서 열심히 전력질주 하고 있는 사람은 그냥 보통의 투수가 아닙니다. 다름아닌 그 유명한 박찬호 선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예나 성적도 이 순간 그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타구를 쫓아 다니며 지칠 대로 지친 자신의 몸에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하는 이 순간만큼 박찬호 선수 또한 그저 한 명의 야구 선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금세 벌떡 일어나더니 김광수 코치에게 계속해달라고 주문합니다. 
 
전날 밤, 박찬호 선수는 두산 선수들 앞에서 세 번째 강연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그가 하는 말 한마디가 선수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값질 것입니다.
 
강연에서 박찬호 선수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과 메이저리그의 차이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선 한국은 하나에서 열까지 코치가 꼼꼼하게 가르쳐 주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렇지 않다. 가르쳐 주는 건 고작 3에서 4정도까지며 나머지는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 번 강연 때는 선수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야구선수에게 가장 큰 유혹은 무엇일까?” 이 같은 질문에 선수들은 대부분 술, 여자, 도박 등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찬호 선수는 그 대답에 수긍은 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분명 그런 것들도 유혹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유혹은 ‘이 정도면 됐지 뭐’하며 타협을 허용하는 자신의 마음”이라고. 이 말을 전해 들은 필자는 특히 ‘유혹(타협)을 허용하는 자신의 마음’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는 박찬호 선수가 운동장 저 너머에 있었던 것입니다.
 
50개, 60개……. 연습은 계속 됐습니다. 박찬호 선수의 표정은 이미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도 또다시 벌떡 일어나 달립니다.

“이제 그만 하죠.” 코치에게 이 한 마디만 하면 아마도 연습은 그걸로 끝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왼쪽으로 달리고 오른쪽으로 쫓아갑니다. 때로는 양손을 무릎에 얹기도 하고 때로는 큰 대자로 눕기도 합니다. 그래도 또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타구를 쫓아 갑니다.
 
이대로 끝내면 편해 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곧 포기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다리가 꼬여 불편한 상태에서도 끝까지 달리는 그의 모습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메리칸 노크는 결코 특별한 훈련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광경을 통해 필자는 박찬호라는 영웅, 박찬호라는 야구선수의 일면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박찬호 선수의 모습은 전지훈련이라는 시기에 야구선수들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동시에 가르쳐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계와 타협을 느끼는 자기자신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 올 한해도 한국 구 팬 여러분께 저의 보잘것없는 글을 전해 드리게 됐습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 드립니다.

 
이정도면 됐지 .. 하는 자신과 타협하는 마음
공감이 가네요.
늘 문제는 내 자신한테 있는 것인데 때때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나한테 너무 배려하고 사는 건 아닌지
때때로 가장 혹독하게 다그쳐야 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인듯 합니다.
이만큼 이정도
언제나 그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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